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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칼럼]老人考-나잇값을 생각하며

최상호<시인. 본지논설위원>
영주시민신문 기자 / 입력 : 2012년 10월 26일
공자(孔子)는 나이가 들수록 사람이 현명해 진다고 했다. 30대는 이립(而立)이라 하여 자립한다고 했고, 40대는 모든 것에 미혹되지 않는다고 하여 불혹(不惑)이라 했다. 50대에는 인생의 의미를 깨닫는 지천명(知天命)이라 하고, 60대엔 어떤 내용이라도 순화시켜 받아들이기 때문에 이순(耳順)이라고 했다. 70대를 일컬어서는 참 드물다고 하여 고희라고 불렀다.

우리는 나이가 들면서 인생과 삶을 깨달아가고 지혜를 얻는다. 반면에 나이가 들수록 젊음을 잃는다는 것은 아쉽기도 하다. 나이가 들면 지혜로운 사고를 하지만 몸의 기력은 점차 떨어지고 기억력감소까지 보태어진다.

그러나 이걸 서러워할 일만은 아니란다. 몸의 기력이 떨어지니 먼데까지 가지 말라는 뜻이며, 치아가 흔들리는 것도 소화시키기 쉬운 것만 골라서 먹으라는 말이고, 나빠진 시력은 제 앞가림부터 하라는 의미일지니 건망증이나 가벼운 치매조차도 쓸데없는 것에 얽매이지 말라는 뜻으로 받아들이라는 게다.

어느 순간 튼실했던 남성의 근육이나 여성의 잘록했던 허리는 사라지고 펑퍼짐한 몸매로 변하게 되는데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세월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나잇살이라고 말한다. 어느덧 칠순 고개를 넘기고 나면 시간의 흐름은 급류를 탄다. 일주일이 하루 같다고나 할까, 아무런 하는 일도 없이, 안부전화도 뜸해지고, 그날에 해 치워야 할 다급한 일도 드물어진다. 이럴 때는 하릴없는 노인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골동품도 귀한 대접을 받는 세상에서 노인도 나잇값만 제대로 하면 얼마든지 귀한 존재가 될 것이다. OECD 34개국 중에서 우리나라 노령인구의 경제활동 참여율이 청년층보다 더 높게 나타났다고 한다. 대한민국에서 노인으로 살아남으려면 죽을 때까지 돈을 벌어야 한다.

오늘도 골목에서 손수레에 폐지를 잔뜩 싣고 힘겹게 걸어가는 어르신을 본다. 대선후보 옆에 떡하니 자리 잡고 앉아 눈 지그시 감은 시대의 원로들도 본다. 다가오는 선비의 고장, 영주의 문화원장 재선거에 또 다시 출마하신다는 분들의 면면을 생각하면서 서둘러 이 글을 쓴다.

노인이 되어봐야 노인세계를 확연히 볼 수 있다고나 할까.

노인들의 삶도 가지가지이다. 노선(老仙)이 있는가하면, 노학(老鶴)이 있고 노동(老童)이 있는가하면, 노옹(老翁)이 있고 노광(老狂)이 있는가하면, 노고(老孤)도 있고 노궁(老窮)이 있는가하면, 노추(老醜)도 있단다. 나이 드는 것을 비하하거나 폄훼하려는 게 절대 아니란 것을 미리 밝히면서 지금 우리들 주변에 계시는 나이 드신 분(노인)에 대해 조심스레 생각해보려는 것이다.

노선(老仙)은 늙어 가면서 신선처럼 사는 사람이다. 이들은 사랑도 미움도 놓아 버렸으며, 성냄도 탐욕도 벗어 던지고 마침내 선도 악도 털어 버렸다. 삶에 아무런 걸림이 없으니 건너야할 피안도 없고 올라야할 천당도 없고 빠져버릴 지옥도 없이 그저 무심히 자연 따라 흘러갈 뿐이다. 가히 신선의 경지가 아닌가.

노학(老鶴)은 늙어서 학처럼 사는 사람들을 말한다. 이들은 심신이 건강하고 경제적인 여유가 있어 나라 안팎을 수시로 돌아다니며 산천을 유람한다. 그러면서도 검소하여 천박하질 않으니 많은 벗들과 어울려 노닐며 베풀 줄 안다. 그래서 친구들로부터 아낌을 받는다. 틈나는 대로 갈고 닦아 학술논문이며 문예작품들을 펴내기도 한다. '선비의 고장, 영주'에도 이 정도는 더러 눈에 띈다.

노동(老童)은 늙어서도 동심을 잃지 않아 청소년처럼 사는 사람들을 말한다. 이들은 대학의 평생 교육원이나 학원, 아니면 서원이나 노인 대학에 적을 걸어두고 못 다한 공부를 하며 평생교육을 따른다. 시경 주역 등 한문이며 서예며 정치 경제 상식이며 컴퓨터를 열심히 배우기도 하고, 수시로 이성 학우들과 어울려 여행도 하고 노래 부르며 춤도 추고 즐거운 여생을 보낸다. 정년퇴임을 하고 수시로 봉사활동에도 참여하는 언제나 청춘인 삶을 누린다.

노옹(老翁)은 문자 그대로 늙은이로 사는 사람을 말한다. 집에서 손주나 봐주고 텅 빈 집이나 지켜주다가 어쩌다 동네 노인정이나 경로당에 나가서 또래들과 화투나 치고 장기, 바둑을 두기도 한다. 형편만 되면 따로 나와 살아야지 하는 생각이 늘 머리속에 맴돌면서도 객지살이에 힘든 아들딸에게 용돈조차 올려달라는 말을 아끼는 삶이다.

노광(老狂)은 미친 사람처럼 사는 노인을 말한다. 함량 미달에 능력은 부족하고 주변에 존경도 못 받는 처지에 감투 욕심은 많아서 온갖 모임의 앞 일꾼을 도맡으려 한다. 돈이 생기는 곳이라면 체면불구하고 기웃거리고 권력의 끄나풀이라도 손대어 보려고 늙은 몸을 이끌고 끊임없이 여기 저기 기웃거리지만 실속이 없다. 아직도 자기가 한창인 줄로만 알고 현직 때처럼 불리기를 바란다.

노고(老孤)는 늙어가면서 배우자를 잃고 외로운 삶을 보내는 사람을 말한다. 주변에는 홀로되신 할머니들이 훨씬 많지만 할아버지들 삶이 상대적으로 더 외로운 법이다. 우스갯소리로 이십대의 아내는 애완동물같이 마냥 귀여웠고, 삼십대의 아내는 기호식품 같았으며 사십대의 아내는 없어서는 안 될 가재도구였으며, 오십대가 되면 한 집안의 가보였다가 육십대의 아내는 지방 문화재급, 칠십대가 되면 아내는 국보의 위치에 올라 존중을 받는 것이다. 그런 귀하고도 귀한 보물을 잃었으니 외롭고 쓸쓸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남자와 여자가 특별나게 다를 바는 없겠다.

노궁(老窮)은 늙어서 수중에 돈 한 푼 없는 사람을 말한다. 입맛 깔깔하게 아침 한술 뜨고 나면 집을 나와야 하는데 갈 곳이라면 공원 광장뿐이고, 점심은 무료 급식소에서 해결한 뒤에 석양이 되면 내키지 않는 발걸음을 돌려 집으로 들어간다. 며느리 눈치 슬슬 보며 겨우 밥술 좀 떠 넣고 식구들 텔레비전 보는 데 방해될까봐 눈치껏 빈방에 들어가서 자는 척 해야 한다. 들릴락 말락 '어서 죽어야지'하면서도 모진 목숨 스스로 끊지를 못해서 죽지 못해 사는 삶이다.

노추(老醜)는 늙어서 추한 모습으로 사는 사람을 말한다. 어쩌다 불치의 병을 얻어 다른 사람 도움 없이는 한시도 살 수없는 못 죽어 생존하는 가련한 노인이어서 평생을 바쳐 기른 자식에게서조차 돌봄을 받지 못하고 시설이나 요양병동에 누워서 산다. 필자의 노모가 가장 두려워하는 삶이기도 하나 처이모님은 수년째 식물인간으로 연명하고 있다. 요양병원 창밖을 보며 쓴 졸시 한편을 보탠다.

길 아닌 줄 알면서도 걸어야 할 때가 있다/머물 곳 아닌 줄을 알면서 쉴 때가 있다/철새가 해마다 오고 감도 그 때문이 아닐까

정치가 꿈이었음을 한바탕 신기루였음을/말없이 지켜 본 이가 제 가슴 치는 변명/그것도 몰랐으면서 입방아를 찧어댔나

아니다 싶을 때는 한 걸음 물러서라/나가고 숨는 일도 오직 제 할 나름인데/한 시절 올라갔으니 내려 설 때 지금이다 -졸시 변명.1 전문

어느 누군들 노선 노학의 삶을 바라지 않으랴.

노동이나 노옹의 삶이라도 누리고 싶지 않으랴. 제명대로 살자니 노고의 삶도 받아들여야 하겠지만 노궁의 삶을 살지 않으려면 노추하지 않으려면 지금부터라도 제 주변 돌아보고 스스로 담금질하기에 게으르지 않아야 할 것이다. 절약하며 건강 생활 습관을 지녀야 할 것이다.

누구나 늙는 게 우리네 인생이 아니던가.
영주시민신문 기자 / 입력 : 2012년 10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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