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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은 순간인거야 <77>

주민기자 한지윤의 기획연재소설

2019년 05월 17일(금) 10:31 [홍주일보]

 

ⓒ 홍주일보


하고 한 박사는 얼른 말을 얼버무려 버렸다.

"신부님, 저런 아이도 살아있는 것이 좋을까요?"

"생명이란 인간 스스로가 살고 싶다든지 죽고 싶다든지 하는 것을 결정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생명에 관한 것은 모두 그렇습니다. 신의 뜻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 편한 일이지요. 인간으로서도 고마운 일이고, 가령 항문을 성형한 아이의 문젠데 대변을 실금할 것이라고 병원에서 말하고 있지만 훈련하기에 따라서는 기저귀가 필요 없게 될 수가 있지요. 그러나 건강한 사람과는 달라서 설사 같은 것은 참을 수가 없을 겁니다. 그렇게 되면 예사로 속내의를 더럽히게 돼죠. 또 냄새가 나니까 다른 사람들이 싫어 할 것이겠죠.

생각하는 능력도 없으니 그대로 두어버리겠죠. 보다 못한 부모가 뒤처리를 해 주게 되면 자기의 일은 자기가 처리하는 훈련이 안되거든……. 이런 악순환이 계속될 가능성이 커지죠. 이럴 경우 곤란한 것은 이 아이 이외의 사람들입니다. 부모라든지, 친구라든지 아니면 그 아이와 가까이 있는 사람들일 겁니다. 처음에는 건강하다가 병이 나서 실금을 한다면 그야말로 비참하지요. 하지만 그 아이는 처음부터 항문 괄약근 같은 것은 없는 아이니까 건강한 변의와 배설의 쾌감 같은 것은 알 리가 없는 거죠. 눈도 마찬가지지요. 지금까지 정상으로 볼 수 있던 눈이 시력을 잃었다면 슬픈 일이지요. 날 때부터 볼 수 없는 눈을 가지고 나왔다면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우리들과는 상당히 다른 점이 있을 겁니다."

한 박사는 극단적인 말을 한 셈이 된다.

"그것이 구원인지도 모르죠."

신부가 말했다.

"구원이겠지요."

"살아있는 것이 좋다고 나는 생각하는데요. 얼마가지 않아서 죽을 줄을 알면서도 그 간 경변의 아이엄마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지 않았습니까. 그 아이의 존재에 정성을 다 쏟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앞으로 며칠 후인지 아니면 몇 시간인지, 아니, 몇 분이나 쓰다듬어 줄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었을 겁니다. 아이는 혼수상태같이 잠들고 있었지만 무의식중에서 아이는 어머니에게 위안을 주고 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슬픔을 주었는지도 모르지만 한편으로는 1년 몇 개월 동안 살아온 그 아이가 그 어머니를 진실 된 어머니로 만들어 준 것이라 생각됩니다."

"포유류라는 것은 새끼 때에는 단지 피부접촉을 하고 있으면 그것으로써 충분하다는 설이 있습니다. 신생아실 같은 곳에 격리 수용하는 따위는 절대 안 될 이야기지요."

"한 박사도 보셨던가요? 경증 아이들이 수용돼 있는 방에 식도와 위가 연결되어 있지 않아서 수술을 받은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여자 이이와 함께 있는 몽고증의 사내아이는 자기를 안아주는 것보다는 여자 아이의 뺨에 자기 뺨을 갖다 부벼대는 것을 더 좋아 하고 있더군요."

"신부님 덕택으로 좋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한 박사는 고맙다는 인사말을 했다.

"아니죠, 공자님 앞에서 논어 이야기를 한 셈이 아닌가요?"

신부는 이렇게 말하고 녹음이 우거져 푸르다 못해 검푸르게 덮혀있는 나무들을 보면서 이야기를 했다.

"살아간다는 것은 고난의 길이군요."

집에 돌아오는 길에 한박사는 문 앞에서 영은이와 마주쳤다.

"어디 갔다 오는 길이지?"

"우체국에 다녀오는 길이예요."

영은이는 회복이 놀랄 정도라고 할 수는 없지만 비교적 건강하게 지내고 있었다. 단정한 옷차림으로 다른 환자들의 세면이나 식사를 돕기도 하고 때로는 복도나 병실을 자발적으로 청소까지 하고 있었다.

"지금 소아병원에 갔다 오는 길인데, 놀랍다고 할지 아니면 가엾다고 해야 할 여자 아이를 보았는데 말이야, 이 아이는 날 적부터 식도와 입이 연결되지 않아서 음식을 입으로 먹을 수가 없지. 수술해서 위로 직접 음식물을 넣고 있어. 고무호스로. 이렇게 되면 입으로 먹어 맛을 본다는 즐거움은 전혀 없는 거야. 비참한 인생인 셈이지."

"전 말예요. 요즘 아무거나 잘 먹고 있어요."

"암, 그래야지. 참 좋은 일인데. 먹는 것까지 가르친다는 것은 부자연스런 일이지, 안 그래?"

한 박사는 웃었다.

한 박사는 약속한 화요일에 박선영의 집에 간다는 것을 아내인 윤미에게 그 경위를 이야기 할까, 말까하고 하루 동안 생각했으나 그만두리라고 생각했다. 아내에게 어떤 조그마한 비밀이라도 갖고 싶지는 않았으나 윤미라는 여자는 어떤 일이 생기면 그 감정을 견뎌내지 못할 때가 많다. 필요 이상으로 오해를 하거나 아니면 이런 일에는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한 박사는 나이분 간호사에게 내용을 말하고 박선영이가 지불한 수술비를 별도로 봉투에 넣어서 바지 뒷주머니에 넣었다.

그 날도 계속 비가 오고 있었다.

한 박사는 버스로 시내까지 가서 버스정류장에서 박선영이 설명했던 미장원을 찾아서 걸었다. <계속>

한지윤기자 hjn@hjn24.com
“ ⊙사시(社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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