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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소리 오피니언 칼럼 - 기차 여행


문틈 시인 기자 / 입력 : 2019년 09월 24일

ⓒ 시민의소리

기차는 ‘영화의 연인’이라는 말이 있다. 일단 기차가 영화 스크린에 나오면 관객들의 시선이 집중되고.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긴장감을 갖게 된다. 기차가 달리는 장면은 가슴을 설레게 한다. 사랑이 시작되고, 사건이 일어나고, 쫓고 쫓기고 하는 스토리를 싣고 영화 속의 기차는 달린다.

케이티엑스를 타고 서울로 가는 중에 어떤 60대 여자가 내 옆 통로를 통해 화장실을 가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 얼핏 본 옆얼굴이 오래 전 작고한 내 친구의 부인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세월이 오래 흘러간 터라 확신할 수는 없었으나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나는 그 여자가 다시 자리를 찾아 돌아올 적에 자세히 보았다.

그 여자는 머리는 희끗희끗하고 얼굴도 꽤 나이든 모습이었으나 분명 얼굴 윤곽이며 동그란 눈매가 세상을 떠난 지 수십 년이 된 내 친구의 부인이 분명해 보였다. 나는 반갑기도 하고,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하기도 해서 자리를 찾아 돌아가는 그 여자를 향해 일어서서 불쑥 누구의 부인이 아니냐고 물었다.

그분은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얼른 알아보지 못했다. 이렇게 해서 지금은 40년도 더 전에 세상을 떠난 내 친구의 아내임을 확인하고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었다. 내가 딸 이름을 지어준 걸 기억하느냐고 했더니 기억한다고 한다. 그동안 재혼하지 않았고 딸은 서울 어디에서 수의사로 일한다고 했다.

나는 행복해 보이신다며 오래도록 건강히 잘 지내시라며 스쳐가는 만남을 뒤로 했다. 자리에 앉아서 너무나 일찍 세상을 떠난 그 친구를 한참 동안 생각했다. 엊그제인 듯 한데 벌써 시간이 그렇게도 빨리 흘러가버렸구나.

기차는 비유하자면 세월에 방불하다. 승객은 시간이라는 기차를 어느 역에서 탑승했다가 다른 어느 역에서 하차한다. 시간이라는 기차는 계속 달리고 승객들은 타고 내리고 또 타고 내린다. 중간에 내리는 사람도 있고, 더 멀리 가서 내리는 사람도 있다. 부부가 함께 탔어도 어느 한 사람을 먼저 내려놓기도 한다.

그러나 세월은 기차와 달라서 종착역이란 게 없다. 승객을 어느 역엔가 내려놓고 갈 뿐이다. 시간은 끝없이 달린다. 인간은 누구나 시간이라는 기차에 탄 승객들이다. 이 기차는 승객들을 기억하지 않는다. 그저 싣고 내달릴 뿐이다. 이 기차는 달려가면서 그 무엇도 그대로 두지 않는다.

얼굴이 붉은 소년을 싣고 가다가 주름투성이 늙은이로 금방 내려놓기도 하고, 종당에는 시발역에서 탄 승객들이 몇 명이 되었건, 누구이건, 결국은 다 부려놓고 새로운 승객들을 태우고 달린다. 기차에는 어느 순간 한 세기 동안에 탔던 사람들이 단 한 사람도 남아 있지 않게 된다.

시간이라는 기차는 매몰차고 냉정하고 무섭기조차 하다. 시간의 종착역이 어디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시간 자신도 모를 것이다. 과학자들 말로는 시간은 맨 처음 공간과 함께 태어났다고 한다. 그렇다면 공간이 사라지면 시간도 사라질 것이다. 그때 결국 시간이 종착역에 당도한다는 말이다.

한데 놀랍게도 생각을 바꾸면 시간의 종착역은 인간 자신에게 있다는 생각에 도달한다. 나라고 하는 이 작은 공간이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 나의 시간이 시작되었고, 나라는 이 존재의 공간이 사라지면 그때 시간도 함께 사라진다. 내가 존재해야 시공이 존재하고 내가 사멸하면 우주도 따라서 사라진다.

그렇다면 가령 이 지구별에 인류라는 종이 단 한 사람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상상할 경우에도 과연 우주가 존재한다고 할 수 있을까. 시간과 공간으로 짜인 우주는 내가 존재함으로써만 존재한다. 궤변같이 들리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케이티엑스는 물론 내가 타거나 내리거나 상관없이 서울로 달린다. 내가 하차했다고 해서 기차가 정읍, 익산, 오송으로 달리지 않는 것이 아니다. 하나 시간이라는 기차는 오직 내게 있어서 나와 함께만 존재한다. 우주는 내가 알아주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각자가 자기만의 빅뱅을 통해 태어나 파국으로 사라진다. 내가 곧 시간이고, 시간의 기차라는 말이다. 케이티엑스를 탈 때마다 자주 나는 이렇게 말도 안되는 것 같은 사고실험을 한다. 어설픈 철학자가 된 나는 옛 친구의 부인을 만나 아득히 먼 과거의 시간을 불러와 내 시간을 쓸쓸해하기도 한다.

나의 시간은 지금도 달린다. 나는 시간이라는 기차 속에서 만난 모든 생각, 감정, 오감들을 어루만지며 그때가 언제가 되던 시간이 멈추는 날까지 어떻든 나는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차여행은 나를 찾아가는 여행 같기만 하다.
문틈 시인 기자 / 입력 : 2019년 09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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